생각한다

죄송 과잉 시대

꿈꾸는 뇌과학자 2018. 5. 29. 20:10

도서관에 들렀다.

얼마 전 신청한 구입 희망 도서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저녁 무렵이었고 이용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대출할 책 3권 중 2권은 잘 처리가 되었는데 남은 한 권이 문제다.

뭔가 시스템이 엉켜서 처리가 잘 안 되는 듯, 일하시는 분은 옆에 있는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닌가 보다.


2, 3분 흘렀나.

잘 마무리되고 도서관을 나오려고 하는데

마지막 관문에서 삐익- 하는 소리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도난방지용 센서 무력화가 덜 된 듯.

다시 방금 그분에게 가서 한 번 더 센서 무력화 작업을 한다.

이건 몇십초 정도.


이 짧은 5분 안쪽 시간 동안

'죄송합니다'를 몇 번이나 들은 것 같다.

조금은 안쓰러웠고 (우리 대부분은 각자 본인이 일하는 곳에서 이처럼 '죄송합니다' 라고 매일 해야 하는 존재니까)

무심결에 '괜찮습니다. 일하시는 분이 실수한 것도 아니고 시스템 문제인데요 뭘' 이라고 하려다가

이상한 분위기가 될까 봐 그냥 가만히 있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혹시 (본의 아닌) 어떤 일로 처리가 늦어지거나 할 때 

이의를 제기하거나, 도서관 웹페이지에 글을 올리거나.. 아니면 인터넷 또 어딘가에 이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와서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봤다.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니까.


오해로 빚어진 일이 하나 일어나고.. 그 당사자가 도서관 웹페이지에 강한 어조로 글을 남기고.. (진실은 저 너머로 가 버린 채)

그 다음 날 도서관 모든 직원이 모여 정신교육!을 받는다..

..

라는 시답잖은 상상을 해 본다. 



몇 분 정도 일 처리가 늦어진 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었고 (몇십분이 넘어갔다면 문제였겠지만)

일하시는 분이 실수하거나 일 처리를 잘 못 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과 기계 문제였으니..

별 일도 아니었는데, 실은.

(3년 넘게 다니고 있는 도서관인데 희망 도서 신청 후 오늘 같은 일은 처음이다.)



마트에서, 공공기관에서, 길거리에서

왕왕 '죄송합니다'라고 안 해도 되는데.. (분위기상?) 해야 할 때를 마주친다.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는 이가 우리 자신일 수도 있고.


이 중 어떤 경우는..

죄송할 필요가 없는데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거다.

(진짜 죄송해야 할 것은 시스템이거나 아니면 우리가 감히 바라보기 어려운 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



도서관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로 해 본 생각인데,

어쩌면 지금 우리는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과하게 자주 써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는 분명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는 걸 너무 잘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 하는, 그런 시대.



나 역시 부족한 사람이니까

조금 더 너그러워져야 한다.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최근에 구입한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이 자기 자비에 대한 책이라는데.. 잔뜩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