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액정에 약간 문제가 있어서 수리하러 서비스센터에 들렀다.
수리에 필요한 예상 소요 시간은 약 40-50분 정도.
(당연히) 핸드폰 없이 대기 의자에 앉아서 기다린다.
잡지도 뒤적여 보고, 책도 뒤적여 보았지만..
한 이삼십 분 지나니 이것도 시들해져 그냥 멍하니 허공을 보며 기다린다.
갑자기 접수창구에서 들려오는 고함!
자세히는 못 들었지만.. 대충 여기까지는 들렸다.
"그러니까 제품이 문제가 있어서 내가 여기 또 오는 고생을 하는 건 아무렇지 않고, 내가 영수증 안 가져왔다고.. "
앞뒤 맥락을 알 수 없으니 더 자세한 사연은 모르겠지만 (정말 궁금했다.. 이상한 사람이 될까 봐 차마 그렇게 못 했지만 옆에 있던 직원에게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아마도 이곳에서 산 물품에 문제가 있어서 환불 혹은 교환하러 오셨는데 영수증이 없었나 보다.
그리고 직원은 매뉴얼대로, 영수증이 없으니 처리가 안 된다고 한 듯.
그 다음이 문제다.
그 (성난?) 고객은 악을 바락바락 지르며 넓은 서비스센터 매장 구석구석에 존재감을 드러내셨다.
약 10초 뒤, 저쪽에서 직급이 높으신 듯한 직원이 나와서 그 고객을 조용한 공간으로 모셔간다.
이후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문을 닫고 이야기를 하셔서.
다만 통유리인 벽으로 저 안의 상황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바락바락은 한 10여 분.. 더 이어졌고, 담당자였던 직원이 불려 들어가고.. 또 시간이 흐르고..
(체력 문제도 있으셨는지) 그 뒤로는 젊잖게 대화가 이어지는 듯하더니 상황이 끝났다.
뭔가 해결 혹은 완결된 상태로 고객은 유리문을 나섰고, 매장을 떠나셨다.
하!
이런 경우, 만약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과하게 언성을 높이거나 불합리한 요구를 계속하면.. '진상'이라고 부른다.
(실은 아까 그 고객님은 통유리 방으로 들어가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합리적으로..!", 본인의 바락바락 성난 목소리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으셨음에도, 물론 앞뒤 맥락을 모르니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음)
그리고 매장에서 그러한 분들께 피해 보는 직원들은 '감정노동'을 한다고 표현한다.
문득 진상과 감정노동.. 단어를 생각해 보니
너무 고상한 표현으로 느껴진다!
적당한 대체어가 안 떠오르지만..
'불합리한 요구를 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고성 또는 거친 행동을 하는 몰상식한 사람' 이라든지,
'위와 같은 말 또는 행동을 하는 악덕 고객 때문에 생기는 심각한 정서적 피해 혹은 소진' 정도가 더 맞지 않나.
아무튼,
사람은 무릇 자기중심적인지라.
그리고 타인의 그것은 잘 감지하지만, 본인의 같은 그것은 잘 모르는지라.
나도 순간 그랬나 보다.
아침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구독하지도 않은 신문이 자꾸 배달되어, 그 신문 고객센터에 배달 중지 요청을 했는데,
지난주에 2번이나 전화를 했는데도 문제가 해결 안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3번째 전화) 좀 길게 사연을 말하며 (아마도 목소리 톤도 조금 높아졌으리라, 내 기억은 덜 그랬을 거라고 미화하겠지만) 통화를 했다.
- 짜증을 심하게 내거나 폭언을 한 것은 아니지만,
- 전화 받으시는 상담사께서 해결할 수 없는 (혹은 응대 매뉴얼에 없는) 것을 요청했고 (물론 나로서는 타당한 요청이었다)
- 어차피 전화로 해결 안 날 일을 몇 분.. 통화한 기억이 났다.
그렇다.
나도 '진상'짓 까지는 아니지만,
'진상' 의 10% 정도 되는 조그마한 실수를 한 거다.
여기에서 정도의 문제가 나온다.
어느 정도 더 넘어섰다면, 내 말도 진상짓이 되었을 거다.
물론 그 전에 전화를 끊었지만.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앞으로 또 살다 보면 비슷한 일이 다시 생길 수도 있겠지만
미리 조심하고, 안 그러려고 노력하고, 또 생각하며 말해야 한다.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상대방이 할 수 있는 일과 아닌 일.
무엇보다 나 또한 어느 장면에서는
상대방(고객)의 불평을 듣는 입장이 될 수 있으니까
그 생각도 해야 한다. 쉽게들 말하는 역지사지.
(문득 든 생각, 정말 돈과 권력이 많은 고객님이셨다면, 친히 매장까지 안 나오고 다른 사람이 일을 대신 처리했을 거니 매장에서 고함 지르고 성낼 일이 없겠지, 하는 생각. 어쩌면 오늘 바락바락 그분은 이런 매장에서나 큰 소리 한 번 치실 수 있는 분일지도, 그래서 더 그러셨던 것일 수도)